인스타그램 안 하는 사람의 심리 (메타인지, 내적통제, 자기대상화)
작년 여름, 제주도 카페에서 에메랄드빛 바다를 마주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다를 감상하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명당'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커피가 식을 때까지 수십 장을 찍고, 보정 앱으로 색감을 조정한 뒤 인스타그램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남은 건 화면 속 이미지뿐이었습니다. 파도 소리도, 바람의 온도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바다를 본 게 아니라 바다를 배경으로 '나'를 전시했던 겁니다.
메타인지: 가짜를 가짜로 인식하는 힘
메타인지(metacognition)란 자신의 사고 과정을 한 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들여다보는 힘입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부러움이 올라올 때, 대부분은 그 감정에 그대로 빠져듭니다. 하지만 메타인지가 높은 사람은 "잠깐, 이건 저 사람 인생의 전부가 아니잖아. 가장 잘 나온 한 장면이잖아"라고 한 번 더 생각합니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1954년 사회비교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을 통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 가치를 측정한다고 밝혔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문제는 인스타그램이 이 '상향 비교'만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피드에는 하이라이트만 올라오니까요.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되기까지 수십 장을 찍고, 각도를 잡고, 필터를 씌우는 과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 구조를 알아차린 순간부터 달라졌습니다. 누군가의 발리 조식 사진을 보면서 "저 사진 찍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라고 생각하니, 부러움 대신 냉정한 관찰이 생겼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울다가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아, 이건 영화였지"라고 빠져나오는 것처럼, 인스타그램도 편집된 영화라는 걸 인식하는 겁니다. 이 스위치를 가진 사람은 같은 피드를 봐도 감정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적 통제 소재: 내 기분을 내가 정하는 축
내적 통제 소재(internal locus of control)는 심리학자 줄리안 로터(Julian Rotter)가 1966년 제시한 개념으로, 자신의 행동 결과가 자기 노력에 달렸다고 믿는 성향을 말합니다. 반대로 외적 통제 소재(external locus of control)는 결과를 운이나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성향입니다. 인스타그램은 전형적인 외적 통제 소재 강화 기계입니다. 좋아요가 300개 달리면 기분이 좋고, 50개만 달리면 같은 여행이었는데도 우울해집니다.
페이스북 초대 사장 션 파커(Sean Parker)는 2017년 공개 석상에서 "우리가 페이스북을 만들 때 목표는 사용자의 시간과 주의를 최대한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좋아요 버튼은 도파민을 쏘는 장치였고, 인간 심리의 취약점을 이용했다"고 고백했습니다(출처: Axios 인터뷰). 여러분의 하루 기분이 엄지 손가락 몇 개에 좌우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됐으니까요.
솔직히 제가 인스타그램 알림을 끈 건 작년 가을이었는데, 처음 며칠은 불안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사진을 봤을까?" "댓글이 달렸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앱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자 신기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출근길에 하늘을 보고 "오늘 날씨 좋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핸드폰을 꺼낼 생각이 안 들더군요. 좋아요 숫자가 아니라 제 감각이 기분을 결정하기 시작했습니다.
- 어제의 나보다 오늘 10분 더 걸었는가
- 오늘 책을 세 페이지라도 읽었는가
- 친구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는가
이렇게 내 기준을 내가 세우기 시작하면, 타인의 피드는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합니다. 내적 통제 소재를 되찾는 훈련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잠들기 전 노트에 "오늘 어제보다 나아진 것 하나"를 한 줄만 적어도 충분합니다. 일주일만 해보세요. 좋아요 숫자를 확인하던 손이 내 기록을 확인하는 손으로 바뀝니다.
자기 대상화 거부: 경험의 주체로 돌아오기
자기 대상화(self-objectification)는 심리학자 바버라 프레드릭슨(Barbara Fredrickson)과 토미앤 로버츠(Tomi-Ann Roberts)가 1997년 제시한 개념으로,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평가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인스타그램을 하는 순간, 우리는 경험하는 사람에서 관찰당하는 대상으로 전환됩니다. 제주도 바다 앞에서 저는 바다를 본 게 아니라, 바다를 배경으로 한 '나'를 전시했습니다.
친구 결혼식에 가서도 셀카를 찍고 스토리를 올리느라 정작 친구에게 축하 인사를 못 했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가장 소중한 순간을 전시하느라 정작 그 순간을 살지 못하는 겁니다. 하버드 진화심리학자 디어드리 배럿(Deirdre Barrett)은 이를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i)'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새에게 진짜 알보다 훨씬 크고 화려한 가짜 알을 보여주면, 새는 진짜 알을 버리고 가짜 알 위에 앉습니다. 인스타그램 피드가 바로 이 가짜 알입니다.
작년 겨울, 저는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핸드폰을 아예 집에 두고 30분간 동네를 걸었습니다. 처음 10분은 불안했습니다. 손이 허전하고 뭔가 빠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20분쯤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왔습니다. 바람이 이렇게 시원했나? 하늘이 이렇게 넓었나? 화면에 빼앗겼던 감각이 돌아오는 순간이었습니다. 30분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저는 그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지만 몸 전체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안 하는 사람들은 사진을 안 찍으니까 바다를 온전히 봅니다. 핸드폰을 안 꺼내니까 친구의 눈을 보고 축하한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잃어버린 감각과 관계를 되찾은 사람들입니다. 좋아요 300개보다 바람 한 번이, 스토리 하나보다 축하 한마디가 더 강력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대상화를 거부하고 다시 경험의 주체로 돌아온 겁니다.
인스타그램을 삭제하느냐 마느냐가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은 가짜 세상에 내 진짜 행복을 저당 잡히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메타인지로 가짜를 꿰뚫고, 내적 통제 소재로 내 기준을 세우고, 자기 대상화를 거부하며 나를 되찾는 것. 이 세 가지 무기를 장착한 사람은 인스타그램을 켜 놓고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진짜 삶은 화면 밖에 있습니다. 오늘 핸드폰 없이 30분만 걸어보세요. 그 30분 동안 무엇을 느꼈는지 기록해두시길 권합니다. 그게 여러분만의 하이라이트가 될 겁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BCa6rXlPKM&t=1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