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는 선택일까? (생물학적 기원, 진화 심리학, 성적 지향)
동성애자는 태어나는 걸까요, 아니면 환경의 영향으로 동성애자가 되는 걸까요? 저는 대학 시절 한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이 질문의 무게를 처음 실감했습니다.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란 그 친구는 스스로를 부정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지만, 결국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바꿀 수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환경이 성적 지향을 결정한다면 그 친구는 누구보다 완고한 이성애자가 되었어야 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생물학적 기원: 뇌의 남성화와 호르몬의 역할
성적 지향이 본성인지 환경인지 밝히기 위한 극단적인 실험이 과거 실제로 있었습니다. 미국의 의사들은 성기에 기형이 있거나 사고로 성기를 잃은 남자아이들을 외과적으로 여성화한 뒤 여자로 키웠습니다. 만약 환경이 전부라면 이 아이들은 남자를 좋아하게 되어야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성인이 된 이들은 여자를 좋아했고 스스로를 남성이라고 인식했습니다.
모든 태아의 뇌는 처음에 여성 상태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남자 태아라면 고환이 만들어지고, 여기서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라는 남성 호르몬이 태아의 뇌를 남성화합니다.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의 2차 성징과 성적 특성을 결정하는 핵심 호르몬으로, 태아기 뇌 발달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만약 태아의 뇌가 테스토스테론에 충분히 노출되지 못하면 뇌가 완전히 남성화되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 남성에게 끌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손가락 길이 비율은 태아기 테스토스테론 노출량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테스토스테론에 많이 노출될수록 약지(네 번째 손가락)가 검지(두 번째 손가락)보다 길어지는데, 실제로 레즈비언 여성들은 일반 여성보다 약지가 더 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이 남성은 반대로 약지와 검지 비율이 여성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이 내용을 알고 나서야 대학 시절 그 친구가 겪었던 고통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 순위도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합니다. 형이 많은 남자 동생일수록 동성애자가 될 확률이 높아지는데, 형이 한 명 늘어날 때마다 동생이 동성애자가 될 확률은 무려 35%나 증가합니다. 이는 모계 면역 반응(maternal immune response) 때문입니다. 남자 태아의 Y 염색체가 만드는 물질은 XX 염색체를 가진 엄마에게 '이상한 물질'로 인식되어, 엄마의 면역계는 이에 대항하는 항체를 생성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아들을 임신할수록 엄마의 면역 반응이 강해져, 나중에 태어나는 아들일수록 뇌가 충분히 남성화되지 못하고 여성보다 남성을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대규모 연구 결과들은 남성 성적 지향의 30~60%, 여성의 경우 약 25%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고 보고합니다(출처: Nature Human Behaviour). 환경도 중요하지만, 유전과 태아기 호르몬 환경이 성적 지향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진화 심리학: 동성애 유전자는 왜 사라지지 않았을까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동성애 유전자가 어떻게 지금까지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았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진화 심리학자들은 여러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는 친족 이타성(kin altruism) 가설입니다. 친족 이타성이란 자신의 직접적인 번식보다 형제자매나 조카 등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의 번식을 돕는 행동 전략을 뜻합니다. 나는 형제와 유전자를 50% 공유하고, 조카와는 25%를 공유하므로, 동성애자가 자신의 자식을 갖지 않더라도 조카를 적극적으로 돕는다면 동성애 유전자는 조카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사모아 제도에는 '파파피네(fa'afafine)'라는 제3의 성 집단이 있습니다. 이들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성 정체성은 여성이며, 성적 파트너로 남성을 택합니다. 사모아 인구의 약 5%가 파파피네로 추정되며, 매년 미스 파파피네 대회까지 열립니다. 관찰 결과 파파피네들은 이성애자보다 조카를 더 자주 돌봐주고, 장난감과 교육비에 더 많은 돈을 투자했습니다. 이를 '게이 삼촌 가설(gay uncle hypothesis)'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후속 연구에서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간 조카 지원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가설이 모든 동성애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성적 지향을 순전히 번식 전략으로만 환원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입니다.
두 번째 가설은 '같은 유전자, 다른 효과(sexually antagonistic selection)' 가설입니다. 이탈리아의 안드레아 캄페리오 치아니(Andrea Camperio Ciani) 교수는 남성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각 약 100명의 가계도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남성 동성애자의 모계 쪽 여성 친척들(어머니, 이모 등)은 남성 이성애자의 모계 여성 친척들보다 자녀를 훨씬 많이 낳았습니다. 즉 특정 유전자가 남성에게는 동성애 성향을 일으키지만, 여성에게는 더 많은 자녀를 낳게 하는 효과를 동시에 가진다는 것입니다. 비록 남성 보유자는 직접 자식을 낳지 못하더라도, 여성 보유자가 그만큼 더 많은 자녀를 낳아 유전자를 보존한다는 논리입니다.
이 가설은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어 현재 가장 설득력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여성 동성애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레즈비언의 경우 이 이론만으로는 진화적 이점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적 지향과 사회적 유대: 동맹 구축의 진화적 의미
동성애를 설명하는 세 번째 가설은 사회적 유대 강화에 초점을 맞춥니다. 영장류 종에서 수컷이 암컷보다 클수록 일부다처제 경향이 강합니다. 일부다처제란 한 수컷이 여러 암컷과 짝짓기하는 번식 체계로, 수컷끼리 암컷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수컷의 몸집이 커지도록 진화합니다. 완전 일부일처제인 긴팔원숭이는 수컷과 암컷의 체격이 거의 같지만, 일부다처제가 심한 고릴라는 수컷이 암컷보다 키가 1.3배 크고 무게는 두 배나 무겁습니다.
인간 남성은 여성보다 평균 17% 정도만 더 무겁습니다. 이는 인류 조상들이 엄격한 일부일처는 아니었지만 극단적인 일부다처도 아닌, 약한 일부다처제를 유지했음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세계 전통 사회의 80% 이상이 일부다처제를 허용했습니다.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아내들 간의 갈등은 필연적입니다. 새 아내가 생길 때마다 기존 아내와 자식에게 돌아가는 자원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갈등을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은 자매 일부다처제입니다. 아내들이 서로 자매 지간이면 유전자를 50% 공유하므로 다툼이 줄어듭니다. 전 세계 일부다처제 문화 137개 중 약 41개가 이를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들이 남남이라면 어떻게 갈등을 풀 수 있을까요? 영국의 심리학자 사토시 카나자와(Satoshi Kanazawa) 박사는 아내들 간의 성적 관계가 갈등을 줄이고 유대감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양성애적 경향을 가진 아내들의 협력이 이성애자 아내들의 견제보다 자녀 양육에 더 유리한 전략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평생 성적 지향이 유동적으로 변하는데, 이를 성적 유동성(sexual fluidity)이라고 합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소녀들은 사춘기가 되면 근친교배를 피하기 위해 출생 부족을 떠나 이웃 부족으로 시집갔습니다. 이를 여성의 외혼제(female exogamy)라고 부릅니다. 반면 소년들은 평생 출생 부족에 머물렀기 때문에, 집단의 모든 남성은 유전적 친척이었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즉 여성은 성인이 된 후 평생을 유전적으로 무관한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여성의 성적 유동성은 새로운 집단에서 친구를 사귀고 동맹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여자와도 사랑할 수 있는 여성은 이성에만 고집하는 여성보다 생존과 번식 확률이 높았을 것입니다. 외혼제를 실천하는 암컷 보노보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긴장 완화를 위해 생식기 마찰 행동을 합니다. 저는 이 설명이 여성 동성애를 단순히 '일탈'이 아닌 사회적 적응 전략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화 심리학자 프랭크 무스카렐라(Frank Muscarella)는 남성도 동성애를 통해 동맹을 형성한다고 보았습니다. 젊은 남성이 나이 많은 남성과 동성애 관계를 맺으면 지위 서열이 높아지고, 결국 여성에 대한 성적 접근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춘기 소년과 성인 남성의 동성 관계가 흔했으며, 이를 사회적 덕목으로 여겼습니다. 물론 이런 해석은 현대 윤리 기준으로 볼 때 문제가 많지만, 과거 사회에서 동성애가 단순히 금기가 아닌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다음은 동성애에 대한 세 가지 주요 진화 가설을 정리한 것입니다:
- 친족 이타성 가설: 동성애자가 조카 등 친족의 번식을 도와 간접적으로 유전자를 전달한다.
- 같은 유전자, 다른 효과 가설: 남성에게 동성애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여성에게는 더 많은 자녀를 낳게 한다.
- 사회적 유대 강화 가설: 동성애 행위가 집단 내 갈등을 줄이고 동맹을 구축하는 수단으로 진화했다.
동성애가 사회적 요인보다는 유전적·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대부분 결정된다는 사실은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인간 다양성의 일부로 이해하게 합니다. 저는 대학 시절 친구가 "나는 선택한 적이 없는데, 왜 세상은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비난하는가"라며 울먹였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저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확신을 가지고 위로해 주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적 해석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진화 심리학은 사후 해석적 성격이 강해, 현재 존재하는 현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 가설을 끼워 맞추는 '적응주의적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여성의 성적 유동성을 집단 내 동맹 구축 수단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사랑의 층위를 지나치게 도구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논리는 역설적으로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 특성은 가치가 없는가"라는 위험한 질문을 낳을 수 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생물학적, 진화적 연구는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과 차별을 줄이는 데 기여합니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는 존중의 도구일 뿐, 그 자체가 가치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설령 먼 훗날 동성애가 진화적 이득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진다 해도, 번식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하고 차별할 근거는 없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인간의 번식이라는 사회적 가치도 변하고 있습니다. 저는 과학이 편견을 걷어내는 도구로 쓰이길 바라지, 차별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쓰이지 않길 바랍니다. 인간 개개인의 실존과 다양성 그 자체로 존중받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진보가 아닐까요.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nGl7bIrFHI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62-019-0785-z